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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쟁이 이야기

직장을 그만둔지 2주일이 지난 지금의 기분

이제 4년 넘게 다녔던 직장을 그만둔지... 2주일도 넘어갑니다. 백수겸 어학연수생이 된 이후로는 제가 시간이 초큼 -_- 많은 관계로... 오늘은 한번 블로그에 제가 끄적였던 글들을 읽어봤습니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랄 정도로 유치뽕짝의 글도 여러개 있어서 확 지워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또 그런 수준의 글을 썼을때는 또 유치해질만 제 나름의 기분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그 기분조차도 기록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지난 1년간은 제가 직장인의 삶에 대해서 느꼈던 바가 많았던 시간이라 그런지... 직장에 관한 글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몇개월 단위로 저의 느낌을 적어놓기까지 했더군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때, 직장인이 된지 4년이 되었을때,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기 한달전의 기분처럼... 말이죠. 그런 제 글을 읽다가... 이제 월급쟁이생활을 청산한지 2주일이 넘는 지금의 느낌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봤을때 유치해서 손발이 오글오글거리더라도 말이죠. ^^;;;

우선 직장인이라는 허물을 벗은후... 이런 점이 저는 행복합니다.
  • 일찍 안자도 됩니다. 회사를 다녔을때는 다음날 일에 방해가 될까... 밤이 조금만 늦어지면 어서 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새벽 3-4시까지 제가 하고 싶은 일하다가 그냥 졸릴때 잡니다. 그렇다고 밤에 뭔 대단한 일을 하는것은 아닙니다. 그냥 영화를 보기도 하고, 집에서 오락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혼자 동네 산책도 갔다가,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마음껏 별 구경도 해봅니다.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있어도... 마음이 편하기만 합니다.  
  •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됩니다. 내일도 저는 딱히 할일이 없거든요. 오늘 할 일을 하지않는다고 해서 저를 갈굴 상사도 없고, 모레까지 끝내야하는 프로젝트도 없습니다. 하루가 "해야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져있기에... 내일 해도 되고, 다음주에 해도 되고, 아예 안해도... 사실 별 상관없습니다.
  • 해가 있을때 밖을 돌아당깁니다. 저는 해가 있을때 퇴근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 워싱턴디씨에서 일했던 관계로 정부부처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5시와 6시사이에 어김없이 칼퇴근하는 공무원들을 사무실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볼때의 자괴감은... 아마 평생 잊을수 없을것 같습니다. 일을 마치고 밤11시에 밤공기 마시며 집에 터벅터벅 걸어갈 때의 허무함은... 제가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게 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해가 있을때 외출을 합니다. 낮에 한산한 백화점에서 아이쇼핑을 하기도 하고, 이른 저녁에 퇴근하는 샐러리맨들에 끼어서 라멘을 먹기도 합니다. 하루가 이렇게 길수도 있다는걸...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 커피를 끊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카페인 중독이 되어서 매일 아침 마시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중이 안되고 몸이 늘어질 정도가 되니 항상 끊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끊을수 없었지요. 대형로펌의 변호사라는 생활이... 매일 긴장의 연속이거든요. 하루라도 일에 온집중을 못하면 웬지 낙오될 것같다는 생각에 커피를 끊을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제 커피를 안 마신지도 일주일이 넘어갑니다. 커피를 안 마셔서 몸이 늘어지면... 그냥 자면 되거든요. 집중이 잘 안 되면... 그냥 집중 안하면 되구요.
  •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운동합니다. 물론 회사를 다닐때에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공원을 뛰면 됩니다. 그런데 야행성인 제게는 밤 10시, 11시까지 일하고, 새벽 2-3시에 잠든 후에 다음날 6시에 일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이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은 주말이나, 아예 야심한 달밤에 체조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10시에 잠이 깨도 학교가기까지는 3시간이나 있으니... 거의 매일 아침 햇살과 함께 공원을 뜁니다. 행복합니다.

새벽에 산책하다가 그냥 아무데서나 들어가서 술도 마십니다

 
 하지만... 백수가 되었다고해서 모든게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 할 일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많이 심심합니다. 그런 경험 하신적 있나요. 시험공부할때...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일" 목록 만드는 일. 하지만... 저는 막상 시험이 끝나면 그 목록에 있었던 것들을 실제로 모두 한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전에는 그토록 간절했던 일들이... 막상 시험이라는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조금 비슷합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들을 워드파일까지 만들어놓고 긴 목록을 작성했지만... 지금 보니 시큰둥합니다. 심지어 조금... 귀찮기까지 합니다. 
  • 미래가 불안합니다. 누구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며 사는거겠지요. 하지만 지난 30년간 꽉 짜여진 계획표대로만 차근차근 살아온 저에게는... 지금의 제 인생이 무계획이라는 사실이 특별히 불안합니다. 아무리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좀 찜찜합니다. (삶의 초점을 미래가 아닌 현재에 맞추기로 한 지금... 어쩌면 제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받아들여야하겠지요. 원래 인생은 불안한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저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2주간 제 삶에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그 전보다 조금은 더 느리게, 조금은 더 머릿속을 비운채 사는 제 자신이... 아직 많이 낯섭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출퇴근을 했던 지난 삶이 굉장히 옛일처럼 느껴집니다. 4년넘게 했던 생활이고, 불과 2주가 조금 넘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때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꼭 무슨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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